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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문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 고전 해석에서 드러나는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

by sunrise-hoho 2025. 4. 18.

고전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글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문학 속에는 당대의 사상, 인간의 감정, 사회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문장 너머의 여백, 말로 설명되지 않은 분위기, 암시, 모순 속에서 전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런 인간적인 해석을 가능한가? 요즘처럼 생성형 AI가 문학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시대, ‘기계는 문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가상의 담론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이 고전 문학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지, 그것이 인간의 해석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과연 어디까지가 가능한지를 차분히 짚어본다.

 

1. 고전 문학은 왜 특별한가? – 구조가 아닌 감정의 집합체

고전 문학은 그 시대의 언어와 감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나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단순히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내면은 분열되어 있고, 그 갈등은 독자가 한 문장을 읽는 순간에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인간 독자는 이러한 감정의 겹침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AI는 문장을 잘게 나누고, 구조화된 정보로만 처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에 담긴 다층적 감정과 의도를 자연스럽게 포착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고전 문학은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작품 속에는 사회적 이념, 정치적 분위기, 시대의 종교적 관점까지 암시적으로 녹아 있다. 독자는 작가가 남긴 빈칸을 스스로 채우고, 단어 사이의 공백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다. 바로 이런 능동적인 해석 과정이 문학의 핵심이다. 반면 AI는 그 공백을 채우기보다는 패턴에 따라 문장을 분류하고, 평균값에 가장 가까운 결론을 도출한다. 그렇기에 문학이라는 장르는, 지금도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에 더 가깝다.

 

2. 인공지능은 문학을 어떻게 읽는가 – 알고리즘의 해석 방식

AI는 언어를 확률과 통계로 해석한다. GPT와 같은 모델은 대규모 말뭉치를 학습한 뒤, 가장 적절해 보이는 단어의 흐름을 예측해 문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분석한다고 할 때, AI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 반복되는 단어, 문장 구조 등을 분석해 ‘복수극’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죽느냐, 사느냐”라는 유명한 대사의 무게감, 그 배경이 되는 내면의 불안, 철학적 질문의 깊이는 단순한 단어 빈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AI는 말의 ‘표면’을 읽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은 놓치기 쉽다.

더구나 AI는 ‘정답이 하나인 문제’에 더 적합한 도구다. 문학은 정답이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찬 세계인데, 알고리즘은 이 복잡성을 직선적인 사고로 단순화시킨다. 특히 주제의 다층성, 아이러니, 시대별 해석 변화 등은 AI의 ‘정적인 이해 구조’로는 따라가기 어렵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독자가 읽은 『프랑켄슈타인』과 오늘날의 독자가 해석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AI는 그 시간적 맥락까지 반영하기보다는, 가장 일반적인 독해 방식에 기반한 ‘가장 무난한 해석’을 제시한다. 이로 인해 문학이 가진 시대성이나 독자의 개별 경험은 희미해질 수 있다.

 

3. 인간과 AI 해석의 결정적 차이점

가장 큰 차이는 해석의 방식이다. 인간은 문학을 읽을 때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이 문장은 이상할까?’, ‘왜 이 인물은 모순적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깊이 들어간다. 그러나 AI는 훈련된 자료를 바탕으로 가장 높은 확률의 ‘정답’을 예측하려 한다. 그래서 역설, 은유, 상징처럼 해석의 여지가 많은 표현을 단일 의미로 정리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때로 모호함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지만, AI는 그 모호함을 오류나 불확실성으로 간주한다.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해석의 다양성’이다. 사람마다 같은 문장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낸다. 이는 문학이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장르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AI는 이 과정을 생략한다. 다양한 해석 중 가장 확률이 높은 한 가지를 제시하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결국 기계가 제시한 문학 해석은 완성형이 아니라,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이 그 안에 감정과 맥락을 불어넣을 수 없다면, 그것은 텍스트의 껍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4. 실제 사례: AI 문학 해석의 한계가 드러난 순간들

스탠퍼드 대학의 한 연구에서는 GPT 계열 AI에게 『위대한 개츠비』를 분석하게 했다. AI는 개츠비의 사랑, 계급 상승 욕망,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틀로 소설을 요약했다. 일견 정확해 보이지만, 정작 상징적인 '초록빛 불빛'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단순한 희망의 상징으로만 해석했다. 독자는 이 불빛에 담긴 자기기만, 상실감, 현실과 환상의 경계까지 읽어낼 수 있지만, AI는 그저 ‘긍정적인 의미’로 치환해버렸다.

이는 상징과 감정이 어떻게 기계적 해석에서 소실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 일본의 고전 『겐지 이야기』를 번역 및 해석한 AI는 당시 귀족 사회의 규범과 유교적 여성상에 대한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현대적 시선으로 읽은 듯한 어색한 해석이 등장했고, 인물의 미묘한 감정선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는 AI가 텍스트의 배경과 시대성을 추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학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시대의 감성’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해석이 유용한 부분

AI가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문학 작품의 구조적인 분석에서는 큰 장점을 보인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시각화하거나, 특정 주제어의 반복 빈도를 분석해 주요 모티프를 파악하는 데 탁월하다. 복잡한 고전 작품의 길고 방대한 내용을 요약하거나,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데에는 오히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나 학생들에게는 작품의 ‘입문용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또한, AI는 다양한 버전의 요약문을 제공하거나, 작가의 표현 경향을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정 단어 목록을 추출하거나, 특정 인물의 대사에서 반복되는 주제어를 분석해 감정 흐름을 시각화하는 등 창작 지원 도구로서의 가치도 높다. 다만, 이러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표면 정보’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느끼는 주체로서의 AI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도구는 해석의 시작점이지 결론은 아니다.

AI는 문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 고전 해석에서 드러나는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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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텍스트를 해석하지만, 문학은 감정을 해석한다

문학이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감정의 전달이고 해석의 예술이다. 인공지능은 문장의 구조와 패턴은 인식하지만, 거기에 담긴 모순, 상처, 애정, 갈등 같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는 인지하지 못한다. 고전 문학은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힘이다. AI는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문학이 품은 불완전함과 해석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있지만, 인간과 AI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